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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mic Soul Food -외노자의 서재

졸부와 부자를 구분하는 확실한 방법

일등석 손님

 

어떤 사람들이 일등석에 탈까? 유명한 배우, 사업가, 재벌 2세 저마다 다양한 배경을 가졌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돈이 많다는 것이다. 일등석을 구매할 만큼의 소득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자. 그렇다. 그들은 부자다. 대기업 임원을 모실 때도, 일등석 손님을 모실 때도, 나는 하나의 뚜렷한 특징을 발견했다.

 

 Money doesn't buy the class.  돈으로 자리를 살 수는 있지만, 그 자리에 맞는 품격은 살 수 없다. 일등석에는 졸부와 부자가 있다.승무원들이 믿는 진리 중 하나다. 학력, 직업, 통장잔고를 알지 못해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들이 입은 옷, 스타일, 외모. 우리는 여러 가지를 통해 사람을 판단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에는 오류가 많다.

이보다 쿨하게 매너를 가르친 자가 있었나!

졸부와 부자의 가장 큰 차이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에 나타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단순한 문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 가치관을 담고 있고,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 또한 담겨 있다. 물 한잔을 부탁해도 “ Water!” “ Can I get a glass of water?” “ I’m sorry to bother you but whenever you have a time, could I have a glass of water?”. 표현이 다양하다. 그리고 이 사소한 선택이 그 사람의 품격을 말해준다. 단시간에 쌓아 올린 언어능력이 아니다. 그들의 삶에서 함께 성장하며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 언어이다. (심지어 사기꾼도 영어를 배울 땐 영국 왕실 영어를 배운다고 한다. 그 어투 하나로 얻는 이득이 크기 때문이다. )

 

일등석 손님들이 모두 타고난 금수저는 아니다. 금수저라 해도 분명 그 자리를 유지하거나, 도약하기 위해서는 언어능력” 은 필요하다. 성공을 위해 설득하는 능력은 필수다. 설득 역시 언어로 한다. 단순히 품격이 아닌 내가 원하는 성공을 위해서도 우리는 언어를 갈고 닦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고 설득하는 능력은 언어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존형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면, 다양함은 잠시 접어 두어도 좋다. 살기 위해서는 일단 내뱉어 의사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등석에서 일하면서 나는 내 영어가 생존형을 겨우 졸업한 수준이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일등석 손님에게 "No"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런 한계를 자주 마주했다. 안 되는 일을 상대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잘 전달하고 싶고, 부탁을 해야 할 때 기분 좋게 'Yes'를 받고 싶었다. 그런 순간에서 나의 언어능력 수준이 드러난다. 사는 데 불편함이 없었지만 보다 “우아한” 영어를 사용하고 싶었다. 레벨을 높이고 싶었다. 돈이 있어도 졸부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 내가 돈이 많다는 말은 아니다.. )

 

당신의 한국어, 괜찮나요?

잠시 잊고 있었다. 내게는 또 하나의 언어가 있다. 모국어인 한국어다. 나의 한국어는 괜찮은 걸까? <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를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한국어를 모국어로써 부끄럽지 않게 사용하고 있는가. 한국어가 가진 품격을 지켜주고 있는가. 영어를 생각하는 마음의 1/10이라도 한국어에 쏟아 본 적이 있었나. 쏟아지는 질문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내 한국어는 졸부와 다르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았고 의미만 통하면 된다며 대충 쓰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나의 한국어 바로쓰기 노트

바르고 정확한 우리말을 연습하려는 분께 권하고픈 책. 외국어와 마찬가지로 우리말도 공들여 연습할 수록 더욱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건만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당장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매스미디어 등에서 잘못된 언어와 어법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어 기준이나 모범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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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저’ ‘조차’ ‘까지도의 차이
a.    해수욕장에는 잡상인까지도 으레 한몫을 보려 한다.
b.    제 아내조차 그를 외면하였다면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c.    아내마저 떠나고 난 뒤라 삶의 의지를 되살리기 어려웠다.  
a에서 까지도는 단순 사실관계를 나타내며 가장 극단적인 예를 표현한다. B의 "조차"는 절대 그러지 않을 사람이 그렇게 한 경우에 그 사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출한다. c "마저"는 마지막 대상이 포함됨으로써 실망하고 포기하는 감정을 표출한다. 이러한 미묘한 차이는 평서문, 의문문, 감탄문에 따라서도 의미가 달라진다고 하니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위 예는 <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에서 내게 가장 쉬운 부분이었다. ///가를 설명하며 주어와 주제어를 들고 서술어와의 호응을 설명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짚어주며 병든 나의 한국어를 진단해 주려 하지만 너무 어려웠다. 읽어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예제를 주고 답도 알려주는 친절한 교육방식으로 쓰인 책이 이렇게 소화되지 않는 경험도 처음이다. 그만큼 내 한국어는 병든 지도 모르게 병들어 있다.

 

모국어는 배운 기억이 없다. 너무 자연스레 써왔고 개떡처럼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 들어주니 신중함을 기할 일이 많지 않다. 사과문, 연애편지, 보고서, 중요한 사업제안서, 정치연설. 특정 목적이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신중할 이유가 없다. 영어는 어떤가? 주어에 맞는 동사도 찾아야 하고, 시제도 생각해야하며  빠진 문장 성분은 없는지, 그에 맞는 전치사는 무엇인지도 고려한다. 생존형을 탈피하기 전까진 한 문장을 위해서도 수없이 머리를 쓴다.

 

결국은 디테일을 추구하는 장인정신

 

외국어 공부하듯 한국어를 바라봐야 한다. Should have done, Could have done, Would have done 의 미묘한 차이는 암기해도 우리 말 디테일은 생각하며 말해 본 적이 없다. 기본 문법을 찾아보고 차이를 이해하고 바르게 쓰는 의식적 노력을 하자. 어법에 맞게 쓴다는 것이 말을 잘한다는 것과 똑같지는 않다. 하지만 내 체면은 차릴 수 있다. 기본이 무엇인지 알고 탄탄하게 그 기준을 내 안에 세워 놓으면 언어를 쓰는 기교와 기술도 닦을 수 있다. 디테일에 집중하는 힘은 언어에서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미묘한 차이를 알아내고 고민하는 자세는 그 분야가 어디든 전문성과 차별성을 갖게 해준다. 하나의 스킬이라고 생각하고 매일 사용하는 말을 대상으로 연습해 보자.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며 머리가 쉬는 날이 없다. 이 글이 한 문장으로 설명되는가, 주장과 취향을 구분하는가, 독자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글인가. 모두 나에겐 아직 어렵다. 하지만 이번 책을 보며 병든 한국어를 고치는 일이 가장 어렵게 느껴졌다.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는 읽기 편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해될 때까지 읽고, 또 읽을 생각이다. 한 번에 고칠 수 없으니 책상 앞에 메모를 붙이려고 한다.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에서 설명한 부분을 모아 퇴고 시 살펴봐야겠다.    

Yes, I am your Seoul Mate :)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정말 많다. 한국에 관심이 있어 배우고, 자국어가 없던 나라에 한글이 표기 문자로 사용되면서 배우는 예도 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이면의 철학과 역사와 가치관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만나는 일이다. 세상을 보는 시선 하나가 아닌 세상과 소통하는 천 가지의 시선을 만나는 일이다. “우리 엄마를 영어로는 “My mom”이라고 한다. 어릴 땐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외국에 살면서 내 안에 우리라는 단어가 심어 놓은 파장을 느낀다. 내게 당연한 행동이 외국에선 친절한 제스쳐로 받아들여졌다. 자주 사용하는 우리라는 단어가 내가 남보다 세상을 조금 더 포용하며 살아가게 만든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느낀다는 이 아마도 우리에서 발현된 행동의 결과가 아닐까. 

 

나는 한국어를 배우고 쓰는 외국인들이 우리의 언어 이면의 따뜻한 가치관도 함께 배우길 바란다. 바르게 한국어를 배우면 하는 바람이다. (욕부터 배우겠지만 욕 말고 다른 것도 배워주라) 그런 바람과 함께 나부터 바른 한국어를 쓰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어를 나를 통해 처음 접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나는 어떤 클래스의 한국어와 한국을 보여줘야할까? 적어도 졸부는 되지 말자.  나의 품격을 위해, 내 모국어 한국어의 품격을 위해 말이다.